기록이 나 대신 업무를 기억하게 하는 법
어떤 목적으로 업무 기록을 작성하고, 어떻게 작성하는지에 대해 적은 글입니다. Craft를 사용했지만 다른 어떤 종류의 노트 앱이라도 괜찮습니다.
업무 기록 : 영업편
우선 업무를 왜 기록해야 하는지를 이야기해보겠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업무를 기록하는 목적이 무엇인가를 먼저 생각해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건 물론 사람마다 다를 수 있고, 여러 가지일 수도 있습니다.
- 공유
- 체계화/관리
- 학습
- 회고
등등이 있겠지만 저의 경우 목적은 단 한 가지입니다. 바로 업무 기록에 기억을 외주 주는 것인데요.
솔직한 심정은 아 일하는 것도 힘든데 기억까지 다 해야 돼? 라는 것입니다. 제가 뭐 기억력이 아주 나빠서 자주 모든 걸 까먹는 정도까진 아니지만, 한 번에 여러 업무를 챙겨야 하는 날들이 많아요. 그래서 이것저것 정신이 없다 보면 당연히 깜빡할 수 있고 깜빡하는 건 실수나 비효율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만약에 쉽고 간단한 방법으로 기억을 기록에 맡기면서 기억에 쓸 노력을 그냥 업무 그 자체에 쓴다면, 훨씬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으니 안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막 하루에 30분씩 기록만 하고 있다든지 하면서 기록을 위한 기록을 하는 건 지양해야겠죠.
이때 제가 외주 주고 싶은 기억에는 2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 과거를 기억하는 것
- 미래에 기억하는 것
우선 과거를 기억한다는 것은 당연히 업무 히스토리를 기억한다는 뜻입니다. 하나의 업무에 대해 일이 언제 어떤 순서로, 어떻게 진행되어 왔고, 지금 어떤 상태인지 알아볼 수 있는 로그를 남기는 것이죠.
이걸 남겨야 하는 이유는 제 생각에 크게 두 가지입니다.
1-1. 과거를 되짚어야 하는 순간에 시간을 크게 단축시켜 주기 때문에
보통 작업을 시작하고 진행된 다음 완전히 종료가 되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습니다. 저는 데이터 분석가고, 지금 회사에 입사하고 나서 고객이 요청하는 모델을 개발하는 일을 주로 해왔는데, 일단 한번 개발해서 던지고 안녕히 계세요 끝끝끝~! (절 찾지 말아주세요 …) 했던 적은 별로 없습니다. 보통은 사용처에서 그걸 쓰면서 문의나 추가 요청을 지속적으로 저에게 도로 던져주시곤 하죠.
만약 지난 주에 했던 업무에 대해서 문의나 요청이 오면, 당연히 아무 기록을 안 해놨어도 바로 답변할 수 있습니다. 지난 주 내내 붙들고 씨름하던 게 한순간에 머릿속에서 싹 없어지진 않았을 테니까요. 하지만 실제로 저에게 오는 문의나 요청의 상당수는 제가 두 달 전에, 반 년 전에, 심지어 재작년에 개발한 것에 대한 것입니다(이건 저와 약간 다른 업무를 하시는 분이라도 데이터를 다루는 분들이라면 다들 공감할 텐데 데이터를 만들어두면 결국 언젠가 누군가 쓰게 되곤 해서, 만들 때 생각지 못한 질문이나 이슈를 뒤늦게 맞닥뜨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오래된 업무에 대한 질문이 던져지면, 처음엔 이게 뭐지? 이게 대체 뭐더라? (심하면) 이런 게 있었나? 제가 만든 거 맞아요? 하는 생각이 듭니다. 메일함을 뒤져서 그때 진행되던 메일 내용을 읽어 보면 될 것 같긴 한데, 복잡한 내용일수록 스레드도 오지게 길어서 나한테 필요한 내용이 어디 있는지도 모르겠고 다 읽으면 최소 5분 이상 걸릴 것 같고…
이럴 때 애초에 제가 개발하면서 기록한 내용이 간결하지만 이해가 쉽게 되게 잘 정리되어 있다면 어떨까요? 그 시간은 분명 1분 미만으로 줄어들게 됩니다. 기록은 주의를 돌릴 때 필요한 인지적 자원을 줄여 준다, 이건 진짜 진짜예요(많이 경험해 봄).
1-2. 유사한 문제는 보통 다시 돌아오기 때문에
우리가 일하면서 겪는 문제는 (항상 재발을 방지하기 위한 뭔가를 만들어두지 않는 이상) 잊을 때쯤에 비슷한 형태로 다시 돌아옵니다.
예를 들어 최근에 뭔가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 에러를 맞닥뜨렸습니다. 동료 분이랑 모니터를 보면서 이게 뭐지? 왜 안 되지? 하고 있다가 갑자기 제가 불현듯 생각이 나서, 아! 저번에도 ㅇㅇ할 때 이런 문제 있었잖아요!
라고 말했습니다. 사실 저는 그냥 그런 게 있었다는 것만 기억나고 그 뒤의 해결책은 기억이 안 났어요. 다행히 그 동료 분이 ㅇㅇ할 때
라는 말만 듣고 아 ㅇㅇ할 때요, 그때 ㅁㅁ해서 해결했었죠
라고 답변을 해주셔서 바로 문제를 해결했었는데요. 사실 그 분은 정말 기억력이 좋으신 것 같고 저는 기억이 나는 경우만큼이나 기억이 안 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만약 그때 제가 혼자였으면 아 ㅇㅇ할 때 이런 거 있었는데… 있었는데 그래서 어떻게 했었냐고…. (그냥 생각 아예 안 날 때보다 더 답답함) 하면서 머리만 쥐어뜯었을 수도 있죠.
하지만 혼자더라도 적어놓은 게 있다면 ㅇㅇ 키워드로만 검색해도 바로 찾을 수 있습니다. 항상 내 옆의 기억력짱인 멋진 동료가 없다면 제가 믿을 수 있는 건 저의 기록뿐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따라서 저에게 필요한 것은
각 업무 별로 알아보기 쉽게 남기는 히스토리
였습니다.
2. 미래에 기억하기 위함
미래에 기억한다는 것은 정말 간단히 말하면 나중에 해야 할 일을 안 까먹는다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일을 하는데 꼭 필요한 데이터가 있어서 다른 팀에 요청을 했다고 칩시다. 그런데 데이터를 남겨주는 데 2주가 걸린다고 합니다. 그러면 저는 딱 2주 뒤에 이걸 다시 떠올려서 이제 데이터 들어오나? 안 들어오면 죄송하지만 재촉해야지? 들어오면 내가 원하는 스키마로 잘 남나? 확인을 해야 하겠죠. 문제는 2주 뒤에 이게 기억이 나냐는 겁니다.
사실 이런 상황은 끝도 없이 많아요. 일은 혼자 하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 이거 A님한테 물어보고 나서 진행해야 하는데 A님이 내일까지 휴가셔서 수요일에 물어봐야 해
- 이거 B팀에 작업 요청 드렸는데 전체 업무 일정을 맞추려면 한 5일 뒤까지도 답이 없으시면 리마인드는 한번 드려봐야 해
- 이벤트가 5월 7일에 시작하는데 그날 맞춰서 데이터를 달래
- …
이런 것들 말이죠. 그리고 솔직히 2주가 뭐래요. 이런 일도 있습니다. 금요일에 퇴근을 하려고 하는데 뭔가를 요청하는 메일이 하나 왔습니다. 간단한 작업이고 당장 해야 하는 건 아니어서 음 이건 월요일 오전에 해야징~! 하고 신나게 퇴근을 합니다. 3일 뒤 월요일 아침에 그게 생각이 날까요? 날 수도 있고 안 날 수도 있습니다. 운이 좋으면 나는 거고(아니면 아웃룩 열었는데 그게 마지막으로 본 메일이어서 아차! 하고 깨닫는 거고) 운이 나쁘면 주말에 노는 동안 뇌에서 싹 사라졌을 수도 있죠. 이건 제가 멍청해서 그런 건 아니고 그냥 직장인이라면 원래 그런 것 같아요.
따라서 저에게 필요한 것2는
어떤 날짜가 됐을 때 그날 해야 하는 걸 보여주는 뷰
였습니다.
업무 기록 : 실전편
이제 그래서 기록을 어떻게 하고 있나로 넘어가 봅시다.
Craft - The Future of Documents
제가 사용하고 있는 도구는 Craft라는 노트 앱입니다. 저는 매우매우 만족하면서 쓰고 있지만(깔끔하고 가벼움) 솔직히 이 앱이 아니라 같은 기능을 제공하는 다른 뭘 쓰든 크게 상관은 없는데요, 중요한 건 링크와 백링크 기능입니다.
공식 영상이 있지만 사실 영상을 봐야 따라할 수 있을 정도로 복잡한 내용은 아니어서 그냥 제가 사용하는 방식을 찬찬히 소개해보겠습니다.
업무 히스토리 남기기
- 각 업무별로 페이지를 생성한다.
- 업무를 잘 요약하는 제목으로!
- 시간 순서대로 날짜 정보와 함께 진행한 작업과 해야 할 작업을 적는다.
- 사소한 작업까지 다 적되, 미래의 내가 알아들을 수 있도록 쉽고 간결하게 적는 게 포인트
최근의 예시를 들면 이 히스토리 페이지는 이렇게 생겼습니다.
요청이 들어와서 해결한 업무이므로 처음에 요청이 온 시점부터 1) 날짜를 링크 2) 그날 한 작업 기록이 시작됩니다. 그 이후 언제 데이터를 확인했고, 뭐가 필요했고, 어디에 요청하고 문의했으며, 언제 리마인드를 드려 답변을 받았고, 그에 따라 가능한 작업을 했고 메일로 공유했다, 그리고 작업 중에 어떤 특이사항이 있었다까지 적습니다. 이 업무 관련해서 만약 3달 뒤에 다른 요청이 온다면, 이걸 보고 어떤 일이었는지 파악한 다음 그때의 날짜를 링크하고 그때 한 일을 적으면 됩니다.
날짜 링크는 매번 22년 3월 11일이라고 적을 필요 없이
/today
단축어로 추가할 수 있습니다.
저는 분석하면서 생각 정리나 메모도 이 페이지에서 하는데요, 다만 그런 메모들은 이 로그를 더럽히지 않도록 맨 하단에 적습니다. 나중에 파악해야 할 때 상세한 작업단의 내용이 섞여 있으면 정신이 없어요.
페이지 브레이크 기능을 사용해서 히스토리 적는 부분과 분석하면서 적는 내용을 구분해둡니다.
데일리 노트에서 그날 할 일 보기(백링크)
그 다음은 각 날짜별 뷰가 필요하다고 했었는데요. Craft가 제공하는 데일리노트 기능을 써보겠습니다. 이 부분은 간단하게 gif로 보겠습니다.
위 그림처럼 날짜를 링크할 경우, 그 링크된 날짜를 클릭하면 해당 날짜 데일리 노트 페이지로 이동하는데요. 여기서 이 날짜를 링크한 모든 문서와 링크된 내용을 보여줍니다(백링크).
따라서 미래에 잊지 않고 해야 할 일이 있다면, 날짜만 링크해두면 해당 일의 데일리 노트에서 그걸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죠.
만약 업무 단위로 관리할 필요가 없는 태스크들이 있다면?
일을 하다보면 꼭 어떤 업무에 속하지 않는 작은 작업들도 생깁니다. 또 굳이 업무 히스토리로 둘 필요 없는 자잘한 운영 업무들도 있고, 파트 리드를 맡은 후로는 제 업무 외의 팀원 분들의 업무 관련해서 발생하는 체크리스트들도 꽤 있습니다. 이런 것들은 하나로 묶어서 볼 필요는 없지만 챙기기 위해서는 데일리 노트에 나타나 줘야 합니다. 따라서 하나의 프로젝트인 것처럼 태스크 페이지를 만들고, 그 안에서 똑같이 날짜 링크와 작업 내용을 적습니다. 회의 목록도 따로 페이지를 만들어서 동일하게 관리합니다.
이번 주 어느 날의 제 데일리 노트는 이렇게 생겼습니다. 사실 업무 페이지의 내용보다 태스크 페이지의 목록이 훨씬 더 기네요.
이건 부가적인 효과인데, 퇴근할 때쯤 이렇게 다다닥 늘어난 링크들을 보면 나 그래도 이렇게 뭔가를 많이 했네 싶기도 합니다.
예전에는 저기에 막 일간 회고도 적고 그랬지만 요즘은 딱히 그럴 시간도 없고, 어차피 데일리 노트는 그 일자가 지나버리면 이후에 잘 다시 보지 않는 페이지이기 때문에 굳이 백링크 외의 다른 내용이 있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처음에 적었듯이 기록은 목적이 중요하고, 기록에 필요 이상의 시간을 쓰지 않는 방법은 딱 목적에 맞는 것, 나에게 필요한 것만 선별하여 적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