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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또 7기 회고

글또 7기

올해도 글또에 참여했고, 이 글은 글또 7기 마지막 글이다.

  • 작성한 글들 (이 글 제외 총 9개)
  • 이렇게 보니 지난 6개월 간 내 관심사들이 그럭저럭 잘 보이는 것 같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어느 한 분야에 치우치지 않고 고르게 글을 썼다고 생각한다. 글또 참여하며 처음으로 다짐글을 안 썼는데 이전 기수에서 다짐글에서 쓰겠다고 한 글을 쓴 적이 거의 없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역시 그때그때 쓰고 싶은 거 쓰는 게 제맛.
  • 새삼스럽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글 쓰는 건 즐거운 일이다. 쓰는 과정 자체도 재밌고, 글을 쓰지 않으면 그냥 지나갈 것들이 두고 볼 수 있게 (나에게 그럭저럭 만족스러운 형태로) 저장된다는 것도 좋다. 이번에 쓴 글 중에서는 Attention의 설명력에 관한 글과 트위터의 이미지 크롭 알고리즘에 대한 글이 쓰면서 특히 재미있었다.
  • 당연히 쓰긴 써도 별 생각없이 쓰던 것들을 글로 쓰면서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는 것도 큰 장점이다. 이번에는 DBSCAN이나 LDA에 대한 글이 그랬다.
  • 역시나 중간쯤 되면 아 뭐 쓰냐 아 뭐 써 공부도 안 했고 쓸 게 없다~~! @!!!! 하는 순간이 오지만 그게 또 지나가면 쓰고 싶은 주제가 꽤 많이 생긴다! 다 주기처럼 돌아오는 것 같다. 그럴 때 쓰라고 패스권이 있는 것이다. ✌️
  • 가끔 잘 봤다는 덧글이나 메일이 오면 정말 기분이 좋다. 뭐 글 쓰는 게 재밌다지만 사실 뭐가 더 재밌게요? 글 쓰고 관심 받는 거요..
    • 나는 여전히 oopy를 이용하고 있는데 콘솔에서 간단한 뷰 통계를 볼 수 있고, 서치콘솔도 붙여놨지만 잘 보지는 않게 된다.

    oopy의 페이지뷰

    • 아직 oopy가 쓸 만하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티스토리나 github 다 전전해봤지만 이제 다른 데로 옮기기도 귀찮다. 웃긴 건 최근에 주된 노트 앱을 노션에서 크래프트로 변경하면서 사실 노션을 많이 안 쓰게 되었는데, 블로그만큼은 계속 노션을 이용할 것 같다. 근데 크래프트 너무 좋아… 크래프트의 멋짐에 대해서도 언젠간 글을 써야겠다.
  • 코로나로 오프라인 만남이 많이 제한적이었던 이전 기수에 비해 이번 기수에는 커피챗과 글또콘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있어서 좋았다. 커피챗 참여하면 예치금도 얹어줘요 세상에! (바쁠 때 제출만 하고 피드백을 까먹어서 까인 예치금이 있는데 커피챗으로 방어했다)

지난 몇 달 회고

아직 10월이라 올해 회고라고 하기는 좀 애매하지만 어쨌든 이번에도 회고를 같이 해본다(어차피 글또 끝나면 한동안 블로그 방치하니깐 지금 해야 됨). 어떻게 할까 하다가, 좋아하는 작가인 캐롤라인 냅의 글의 어떤 부분이 생각났다. 대충 다음과 같다.

시행착오와 데이터 수집. 이것은 수고가 들고 힘든 일이다. 나는 개와 함께 미들섹스 펠스 자연보호 지구를 걷는 일을 700번 한 뒤에 발견했다. 그래, 나는 이게 좋아. 개와 함께 숲에 오는 일이 좋아. 재봉틀과 900번 씨름해서 족족 패배한 뒤에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그래, 나는 이게 싫어. 난 바느질에 필요한 인내력이 없고 이걸 하면 내가 무능하다는 느낌만 들어. (…) 이런 발견은 우리가 견고한 자아 감각을 구축하려면 꼭 필요한 작은 벽돌들이다. 나는 이런 사람이야, 내 욕구는 이것이야, 내 특별한 강점과 약점은 이것이야, 하는.

그래서 이 컨셉으로 내가 올해 나에 대해서 수집한 아주 개인적인 데이터들을 한번 정리해 보려고 한다.

스트레스 받으면 일단 해치우는 게 맞다

예전에 이 짤을 처음 봤을 때 와 진짜 대단하다 대단한 사람한테만 해당되는 방법이네 라고 생각했다(비꼬는 거 아니고 진심으로). 하지만 나는 이게 정말 맞말 중 맞말이며 나에게도 해당될 수 있다는 걸 올해 깨달았다.

아무래도 결혼과 이사가 올해의 가장 큰 이벤트였는데, 지난 열 달 간 결정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어서 스트레스 요소가 많았다. 나는 원래 결정을 잘하는 편이자 내가 결정을 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고, 다행히 관계자들 모두 다 내 마음대로 하게 내버려 둬서 외부 갈등이 없었음에도 그랬다. 일단 언젠가 정해야 하는 문제를 남겨두는 것 자체가 상당히 스트레스였다. 대체 불확실성은 왜 이렇게 불안한 건지…!

그래서 모든 중요한 업체 선정과 예약을 준비하기 시작한 1월에 다 해버렸다. 그리고 그 이후 세부 디테일을 정할 때도, 모든 업체에서 이렇게 빨리 고르시는 분은 처음 봐요 라는 소리를 한번씩 들었다. 그 결과 크게 스트레스 받고 에너지 뺏기는 일 없이 무사히 다음달에 결혼식을 하게 됐다(아마도..별일 없겠죠..). 역병 관련 제한 풀려서 웨딩 업계 물가 오르고 비행기 값 오르기 전에 결제 싹 한 것도 아주 이득. 나 같은 성격의 사람이 괴롭지 않으려면 ‘빠르게 해치우기’는 항상 옳은 대처 방법인 것 같다. 오히려 스트레스 받지 않는 일이라면 미뤄도 되고, 하기 싫을수록 해서 치워버리기.

어쨌거나 긴 과정이었기 때문에 솔직히 결혼식이라는 이벤트에 대해 이제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는다. 빨리 남은 한 달이 지나고 모히또에서 몰디브 때려마실 생각뿐이다. 🍸

의외로 좋아하는 운동이 있다

자랑은 아니지만 나는 태어나서 운동을 좋아서 해본 적이 없다. 만 25세 이전에는 거의 하지 않았고, 그 이후에는 오로지 살기 위해서 할 뿐이었다.

그러다가 6월쯤 충동적으로 수영을 배우기 시작했다(계기: 바다에 놀러갔는데 친구들이 바다에서 수영하는 동안 5세 미만의 어린이들과 함께 물이 발목까지만 오는 구역에서 망부석처럼 서 있다가 현타 옴).

근처 스포츠센터에 무려 주말반이 있길래 시작했는데 의외로 너무 재밌는 것이다! 일주일에 한번씩만 강습을 받으면서도 평영까지 꽤 빠르게 배웠다. 단순히 재미있기만 한 게 아니라 물에 들어가면 정말 다른 잡념이 전혀 들지 않고 물 안에서 움직이는 감각에만 집중할 수 있어서 좋다. 수영복 사모으는 재미도 쏠쏠하다.

수영 가는 날마다 기대하면서 수영 가방 싸는 내 모습 조금 낯설다..

그외:

  • 생각해보니 올해 그 외에도 안 해본 운동을 좀 해봤다. 팀원 분들이랑 클라이밍 일일체험을 가기도 했고 친구들한테 끌려가서 한라산에도 올라가봤다. 인생 첫 등산이 한라산이라니 다시 생각해도 어이가 없다.
  • PT도 올해 내내 꾸준히 받았다. 이건 진짜 살기 위해서 하는 운동이었다. 연말 오기 전에 끊어놓은 회차가 끝날 텐데 더 지속하지는 않을 생각이다. 이사를 가기도 하고, 결정적으로 돈이 없다. 결혼과 이사로 인해 이 고금리 시대에 빚이 빚이 글쎄 (이하생략)
    • 그래도 체력이 좀 나아진 것 같고 몸 상태도 좋아졌다. 나는 평생 동안 체지방이 30%가 넘는 무근육의 상태로 살아왔는데, 올해 동안 체중은 2-3kg 정도만 빠지면서 체지방이 이만큼 줄었다! 솔직히 이건 자랑할 만한 것 같다

뭘 하든 잘한다는 감각이 중요한 동기이고, 그 감각이 들지 않으면 만들어야 한다

수영 첫 강습을 가기 전에 잘 못할까 봐 걱정하고 있었는데, 그걸 보더니 남자친구가 “괜찮아 넌 못하는 게 없잖아”라고 했다. 아니 그렇진 않지 못하는 게 왜 없어? 라고 했더니 “넌 못하면 그만두잖아. 그러니까 못하는 게 없지” 라고 해서 엄청 웃었고 좀 소름돋았다. 그게 다른 사람 말이든 내 스스로 평가든, 정말 난 잘한다 잘한다 해야 더 잘하는 사람이고, 못한다고 하면 더 열심히 해야지 결심하기보단 그냥 버리고 튀는 사람이다. 작년에 (역시 친구들에게 끌려) 수상스키를 타러 갔다가 가평 물 절반을 처먹고 돌아오고 나서 다시는 수상스키를 시도하지 않을 거라고 결심했지만, 올해 시도한 수영은 꽤 빨리 배우는 편이었고 그랬기 때문에 진심으로 좋아하게 됐다. 만약 잘 못했다면? 다른 취미를 찾았겠지.

수많은 자기계발 책들이 실패해도 다시 도전하는 끈기를 높이 사고, ‘될 때까지’ 해서 끝끝내 성공한 사람들의 미담을 판다. 그런 책을 읽으면 항상 그러지 못하는 나 자신이 아쉬웠다. 못한다는 피드백에 대한 대응방식과 끈기 없음이 내 취약점으로 느껴졌던 것 같다(아니 느껴지는 게 아니라 어느 정도 사실임).

하지만 이걸 일단 인지하고 나니, 내가 어떤 사람인지는 이제 와 바꾸기 어렵지만 그때그때 좀 나은 방향으로 써먹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어 일이 잘 안 풀릴 때, 일은 취미가 아니므로 원래 내 행동 양식대로 도망칠 수는 없다. 따라서 안 되고 있는 과제에 집중해서 매달리기보다는 순간 내가 효능감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을 빠르게 찾는다. 유연하게 문제를 변형해서 정의하거나 부분적으로 쪼개서 내가 해결할 수 있는 것을 해결하는 것이다. 물론 이런 문제의 재정의는 어느 정도의 기술이 필요하다. 개인적으로는 내 직무에서 굉장히 중요한 능력이라고 생각하는… 그런 기술임.

아무튼 이렇게 해서 나온 것은 때로 최선의 결과가 아닐 수도 있다. 될 때까지 끈기 있게 매달렸더라면 더 좋은 게 나왔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미 어느 정도 문제를 해결했기 때문에 효능감이 발생하고, 재미도 있으며, 결과적으로 내가 그것을 내던지거나 좌절하지 않게 해준다. 조금이라도 성과가 보이고 나면 못한다/못하겠다는 감각이 사라지면서 나머지 부분에서 돌파구를 찾을 수 있다.

좋은 전략이다! 물론 안 되는 걸 해야 할 때도 있는데 그때는 그냥 좀 울면서 해야지 뭐!

이제 잘 쉬는 법을 알겠다

올해로 회사에 다닌 지 만 3년이 넘었는데, 배우고 적응하는 데 급급했던 시기가 지나고 여유가 생기니까 확실히 잘 쉬는 게 중요하다는 걸 실감하게 됐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로 일을 하는 것만큼이나 쉬는 게 중요하고, 퇴근하고 나서의 시간이나 주말을 어떻게 보내는지가 일하는 시간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특히 나는 에너지 레벨이 매우 낮은 사람이어서 나에게 주어진 작고 소중한 에너지를 잘 달래고 다시 채워 가며 써야 한다.

다행히 예전에 비해 나를 편안하고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것들을 상황에 따라 적절하게 떠올리고 실행할 줄 알게 되었다. 이게 뭔 말이냐면, 샤워를 하고 무릎에 개를 올린 다음에 영화를 틀거나 책을 펼치고 버번 한 잔 따르기 → 거의 100% 피로가 풀리고 행복해짐 뭐 이런 조건식을 많이 세울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피곤하고 우울한데 무기력하니까 뭐 할지 모르겠어 하고 누워 있던 적이 많았는데 요즘은 그런 날들이 많이 줄었다(물론 어떤 날에는 그냥 4시간 누워 있기 도 괜찮은 해결책이긴 하다). 아무튼 컨디션이나 기분이 좋지 않은 날에도 나에게 나름의 방법이 있다는 걸 알기 때문에 도움이 된다.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럽게 생기는 능력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이것도 비교적 최근에 이룬 성과라고 생각한다.

아 인생 뭐하러 사냐 이거 하려고 살지! 하는 이거를 찾으면 다른 시간에는 다른 것들도 잘 할 수 있다


아 마무리, 마무리 어떻게 하냐. 아직 10월밖에 안 됐기 때문에 벌써 내년 운운하긴 좀 그런 것 같다. 남은 10월은 청첩장이나 열심히 돌리고 결혼식 끝나면 여행 포함해서 그냥 한 달 정도 별 생각 안 하고 쉬려고 한다. 12월쯤 뭔가 내년 다짐 같은 거 생각이 나면 돌아올지도. (작년 회고글도 봤더니 주절주절 쓰다가 길어져서 다짐 못 쓰고 끝났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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